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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 스프와 냇물에서 건저낸 성모상

스위스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

레나테 마이어씨가 스위스 쟝크트 갈렌 주의 빌트하우스에 위치한 스위스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자인 울리히(훌드리히) 츠빙글리의 생가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Photo: epd-bild/Hans-Christian Roestel)

스위스에서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칼빈과 츠빙글리가 종교개혁 정신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스위스에서도 종교개혁 500주념 기념행사가 열리며 다양한 곳에서 다채로운 볼거리가 제공된다

우유, 소금 약간, 육두구, 월계수잎, 정향, 계란 노른자, 크림, 빵과 버터 소량 – 이 열 가지 남짓의 재료만 있으면  „카펠의 밀크 수프“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그릇에서 나눠 먹어야 하며  빵 조각만 각자 앞으로 할당된다. 

이 요리법은 훗날 요하네스(쟝)  칼빈 (1509–1564)과 같이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적 사고를 16세기 스위스에 전파했던  스위스인  울리히 (훌드리히) 츠빙글리 (1484-1531) 의 발자취  중심에 있다. 

22세에 사제가 된 츠빙글리 

츠빙글리는 학업을 마치고 22세에 사제가 되었다.  취리히 그로스 뮌스터에서 목사로, 사회 개혁자 및 정치가로서 1523년부터 내륙 스위스 주들을 제외한 독일어권 스위스에서  확산된 취리히의 종교개혁을 추진해갔다. 

츠빙글리는 개신교 운동이 확산되면서 발발한 카펠 암 알비스의  2차 전쟁에서 사망했다.   „종교개혁 500주년“ 은 이러한 이유에서 스위스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며 다양하게  평가된다. 밀크 스프 요리법은  츠빙글리가 신학자가 되어 가는 여정과 종교개혁 운동에 미친 그의 영향을 보여주는 전시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레나테 마이어씨가 스위스 쟝크트 갈렌 주의 빌트하우스에 위치한 스위스 신학자이자 종교 개혁자인 울리히(훌드리히) 츠빙글리의 생가를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Photo: epd-bild/Gion Pfander)

토겐부르크 츠빙글리 센터의 전시는 그의 생가인 빌트하우스에서 열리는 종교개혁자 기념 행사의 한 부분이다.  이 전시회는 츠빙글리의 생애와 업적, 취리히의 종교개혁 및 가족 연구를 보여준다.

츠빙글리의 생가는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창고를 포함해  1450년 즈음 정교한 목재 건축방식으로 지어졌다.  츠빙글리의 성향을 잘 반영해 주는 듯 일부는 초라하게 꾸며져 있지만 현재 박물관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의 아버지는 장사를 하기 위해 롬바르디아까지 여행했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가정이라 이 곳에서 최대 13명이 함께 지냈던 적도 있습니다“, 라고 레나테 마이어씨는 투어에서 설명했다. 이 집은 1848년 츠빙글리 협회 빌트하우스 – 알트 쟝크트 요한과 취리히의 츠빙글리회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다. 가문비 나무와 천장 조각으로 꾸며진  건축물 외에도 1531년 취리히 성경 복사본 등 다양한 성경본도 볼 수 있다. 

소박한 성찬식 도구들은 츠빙글리의 순수주의적 성향을 보여줘 

나무로된 잔과 그릇과 같은 간소한 성찬식 도구들은  순수주의적이고 오직 성경 내용에만 따르려했던 츠빙글리의 성향을 보여준다.  지난 해부터 허브와 채소가 있는 전통 정원도 만들었다. 장소 이동:쿠어 시는 스위스 남동부의 중요한 상업 도시이자 철도 교통의 요지, 당시와 마찬가지로 주교구의 수도이며 그라우뷘덴 주의  주도이다. 많은 골목길, 상점과 레스토랑이 있는 구시가지에서도 전(前) 관광센터장이었던 페터 라우베씨와 함께 전통적으로 또는 무대 복장으로 교회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 

헬퍼라이는 취리히의 그로스 뮌스터 여러 건물 중 하나이며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가 살던 집으로 유명해졌다. 사진 속 „츠빙글리 슈투베“ 는 건물 2층의 츠빙글리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집의 일부이다. (Photo: epd-bild/Gion Pfander)

쿠어 의 종교개혁에서 요하네스 코만더(1484–1557)가 빠질 수 없다.: „그는 바젤에서 츠빙글리와 함께 공부했고  1523년 쿠어의 쟝크트 갈렌 중앙교회로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종교개혁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고 라우베씨는 설명했다. 

오늘날 칸톤들의 시발점이었던  3개의 동맹, 즉 그라우어 동맹(회색 동맹), 첸게리히텐 동맹 (10대 법역 동맹) 과 고테스하우스 동맹 (신전 동맹)에서  교회 규정을 개혁하고자 하는 확실한 의지가 있었고 정치 세계적 분야의 영향 하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의 도시“  일란츠에서도 볼 수 있다. 

정치 세계적 분야의 영향 하의 종교개혁 

시청 근처  민회(民會) 광장 위에 위치한 일란츠의 레지우날 수르셀바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마리아네 피쉬바허씨가 일란츠에서 기다리고 있다. : „이곳에서 지역과 종교개혁의 역사를 알아보는 투어가 시작됩니다. “ 코만더가 1526년 논쟁 중 그의 종교개혁적 믿음을 피력했던 곳이기도 하다.  „일란츠의 법령“ (1524년과  1526년) 은 쿠어의 주교를 세속적인 영향력에서 분리하고 목사를 직접 임명하고 파면할 수 있는 권리를 통해 종교개혁의 길을 닦았다. 

본 투어는 르네상스 시대 천장 그림과 지역 박물관이 자리한 개혁 교회인 성 마가레텐 교회도 지나는12개의 여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 곳에서 2018년 부활절까지 특별 전시회  „십자가 혹은 닭“이  종교개혁 당시의 사건과 다양한 종파가 공존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전설에 따르면 1530년 경 개혁파 두빈 주민이 골짜기로 던져버린 것을 파이덴의 천주교 주민들이 글레너 냇물에서 건져냈다는 성모상과 같은 전시품과 사진들이 전시된다.  스위스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Information

Source:epd Date:15-08-17

요하네스 칼빈

요하네스 칼빈은 마르틴 루터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종교개혁자이다. 오늘날까지 칼빈주의는 전 세계로 전파된 가장 유력한 개신교 선교운동 중 하나이다.

울리히 츠빙그리

비텐베르크 종교개혁이 성공하자, 이에 고무되어 츠빙그리는 로마가톨릭 교회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1529년부터 그는 종교개혁을 급진적으로 관철하려 하였다. 결국, 그는 종군 설교자로서 손에 칼를 들고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