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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풍습을 바꿔놓은 마틴 루터와 종교 개혁 크리스마스 트리는 루터로부터 유래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찬송가 „높은 하늘에서“ 는 그의 작품이다.

”가족들과 함께 겨울의 기쁨에 빠져있는 루터“.구스타프 쾨니히의 동판화 (Photo: © epd-bild / akg-images)

바깥은 춥고 어둡고  눈이 쌓여있지만 집안에는 밝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고 헤른후트의 별도 걸려 있을지 모른다. 촛불은 켜져있고 가족들은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과 커피나 차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직접 부르거나 적어도 „카세트“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나서는 드디어 마음이 혹하도록 예쁘게 트리 아래 놓여있는 선물을 열어 본다. 아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와 유사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항상 일반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풍습과 그들의 변천사를 알아보려 한다. 

16세기 말부터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등이 켜졌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에 16세기 말에야 알려졌다. 뤼첸에서 부상을 당한 후 건강을 회복하게 된 한 스웨덴의 장교는 크리스마스 파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파티에 그의 고향에서는 일반적인 형태인 전등으로 꾸민 나무를 세워놓았다. 어떤 이들은 마틴 루터 때문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유명해졌다고 주장을 한다. 루터가 크리스마스에 그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작품들이 있으며  촛불로 장식된 침엽수를 뚜렷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루터 생전이 아닌 최근 작품으로 역사적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널리 알려진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루터 생전에도 크리스마스에는 상록수가 있었다. 이미 1419년에 프라이부르크의 제빵 조합은 레브쿠헨, 사과, 종이와 색깔로 물들인 견과류로 나무를 꾸몄다고 전해내려 온다. 1521년 엘사스 지방 슐레트슈타트의 산림관이  „마이엔“을 감시하는 댓가로 월급을 받았던 사실은 알려져있다. „마이엔“은 크리스마스 때 장식되었던 나무를 의미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전등이 아닌 붉은 열매들로 장식되었다. 항상 새롭게 되살아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 나무를 장식했다.  이러한 이유로 루터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선물과도 관계가 없을까?

선물은 크리스마스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Photo: pixabay)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아기 예수

크리스마스에는 당연히 선물이 있었지만 크리스마스에만 선물을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틴 루터는 이 변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어권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된 것은 마인츠 종교회의  이후인 813년부터였다.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는 가정이 아닌 교회에서만 치러졌다. 16세기에는 아이들이 12월 6일 선물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선물들은 주로 맛있는 음식, 사과 또는 견과류였다. 성 니콜라우스의 날에 선물을 가져다 준 인물은 성 니콜라우스였다. 이 인물은 뮈라의 니콜라우스 주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간적인 성직자이자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마틴 루터에게 성자들은 근본적으로 눈에 가시였지만 성 니콜라우스는 달랐다. 1527년 루터가 성 니콜라우스 축제에서 한 설교에서 성 니콜라우스 전설은 „유치한 일“ 이라고 했다고 전해 내려온다.  루터는 근본적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를 아이들 교육 방법으로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금식을 하고 기도를 하고 저녁에 다음 날 입을 옷을 준비해 놓으면 아기 예수나 성 니콜라스가 선물을 주지만 기도를 하지 않으면 선물을 받지 못하거나 회초리를 맞거나 말똥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이“  루터는 근본적으로 선물을 주는 행위를 아이들 교육 방법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루터 가정에서는 1535년에도 아이들을 위해 성 니콜라우스일 선물을 구입했다. 이 외에도 당시에는 하녀나 하인들도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많은 지역에서 크리스마스에 하인 고용법에 하인들의 법적 권리로 명기되어 있는 실용적인 물건들을 선물했다. 

루터는 니콜라우스 문화를 유치하고 거짓으로까지  여겼기 때문에 그는 훗날 그의 추종자들이 그랬듯이 니콜라우스를 금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터는 선물을 위해 다른 인물을 도입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식탁 담화에서 루터는 그의 딸 막달레나에게 물었다: „레니야, 성 그리스도가 너에게 무엇을 선물하게 될 것 같으냐?“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성 그리스도는 갓난 아기 예수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예수 탄생극의 천사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는 오늘날의 아기 예수의 모습이기도 하다. 루터가 아기 예수를 고안했다는 주장은 학술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확실한 것은 아기 예수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선물들이 성 니콜라우스의 날이 아닌 크리스마스에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흥미있는 것은 카톨릭 지역에서도 아기 예수가 선물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에 반해 북부 독일 및 동독 일부 지역은 제외되어 19세기 중반부터 산타클로우스가 선물을 가져다 준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루터“.1866년, 구스타프 아돌프 슈팡엔베르크 그림 (Photo: © epd-bild / akg-images GmbH)

나은 예배를 위한 독일어 찬송가

크리스마스 풍습 중 세번째 중요한 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크리스마스 노래들이다. 여기에도 루터는 그의 흔적을 남겼다. 루터는 학창시절부터 성가대원이었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으며 학생시절  류트 연주법을 독학으로 배웠다. 루터의 음악적 교육은 종교개혁과 함께 성도들은 예배의 일부가 되어 이해하고 함께 부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도움이 되었다. 루터는 예배에 독일어를 도입했으나 독일어 찬송가는 부족했다.

1523년부터 루터는 성도들의 찬송가를 위해 오래된 노래에 새로운 노랫말을 주로 붙여 새로운 노래를 작곡했다. 1524년 „천주께 영광“이라는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의  반복되는 라틴어 구절을 기본으로 한 루터의 최초 크리스마스 찬송가 „예수 그리스도의 찬송을 받으소서“,가 발표되었다. 그의 크리스마스 찬송가 중 1535년 발표된  „높은 하늘에서“ 가 가장 잘 알려져있다. 원래는 연주곡에 작사를 했었으나 후에 성가 멜로디를 붙였으며 1539년 최초로 인쇄되었다. 루터는 전적으로 가정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크리스마스 동요“로 기록했다. 37곡의 찬송가가 확실히 마틴 루터의 작품이다. 오늘날까지도 개신교 찬송가에서 볼 수 있고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에 의해 정점에 다다랐던 정신적 음악 문화의 시초가 된다. 

Information

Source:luther2017.de/epd Date:15-12-16